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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에서 우연히 찾은 화협옹주 무덤서 여성용품 무더기 발굴
백자 용기에 든 조선시대 화장품, 크림·립밤 등으로 ‘부활’
화협옹주묘 출토 화장품을 바탕으로 현대 제품으로 실용화해 제작한 청화백자 용기의 화장품들.
“땅 속에서 나무로 만든 말이 나왔습니다.” 2015년 8월13일 경기도 남양주시청 문화관광과에 심상치 않은 문화재 발견 신고가 들어왔다. 제보를 한 이는 남양주시 삼패동에 사는 농민 김정희씨. 집 주변 밭을 경작하다가 돌함과 덮개, 목제 말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을 긴급 발굴한 고려문화재연구원 쪽은 또 다른 돌함과 작은 백자 항아리 칠기로 만든 명기와 벼루 등을 추가로 찾아냈다. 아무리 봐도 왕족의 무덤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 발굴 비용을 조달할 길이 마땅치 않았다. 1년이 지난 뒤 문화재청 긴급 발굴 조사비를 받고 다시 조사에 착수한 연구원 쪽은 ‘대박’을 터뜨린다. 18세기 조선 영조 임금의 셋째 딸이자 뒤주에 갇혀 숨진 사도세자(1735~1762)의 친누나 화협옹주(1733~1752) 이장전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무덤 안에서는 영조가 지어 새긴 지석(誌石:망자의 인적 사항·정보를 기록해 묻은 편편한 돌)과 화장품으로 추정되는 가루가 든 청화백자합 등 당대의 여성 용품이 무더기로 나왔다. 무덤을 둘러싼 단단한 석회 회곽 벽에 ‘유명조선화협옹주인좌’(有名朝鮮和協翁主寅坐)라는 묘지석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또 지석에는 영조가 글귀를 지어 새기고 먹으로 칠한 ‘어제화협옹주묘지’(御製和協翁主墓誌)란 명문이 남아 있었다. 앞면, 뒷면, 옆면에 394개의 글자를 새겼는데, 말미에는 ‘한 줄 기록하는데 눈물 열 줄기가 흘러내리는구나’란 구절이 적혀 있어 앞서 간 딸에 대한 아비의 사랑과 슬픔을 짐작케했다.
2016년 화협옹주묘 발굴 직후 수습된 18세기 화장품 용기들. 삭은 보자기 안에 들어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화장품으로 추정되는 분말과 액체 내용물이 그대로 남은 채 발견된 청화백자합과 분채백자 등이었다. 김아관 당시 실장을 비롯한 발굴단은 무덤 속 회곽으로 봉한 석함 안에서 삭은 보자기에 싸인 청화백자 화장품 용기가 나오자 잔뜩 흥분했다. 햇빛에 노출될 경우 손상이 우려돼 곧장 단국대 석주선 박물관 쪽에 연락했다. 바로 달려온 박물관 연구자들과 불과 1시간여만에 신속하게 수습해 항온·항습 장치에 넣어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인계할 수 있었다. 놀라운 건 그로부터 1년 뒤인 2017년 3월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연구진이 이원훈 경상대 식물의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분석한 화장품 유물의 내용물 분석 결과였다. 손바닥만한 청화백자 칠보무늬 팔각항아리에 있는 미지의 액체와 그 안에 담긴 거뭇한 덩어리의 정체를 현미경 등으로 확대·관찰한 결과 수 천 마리의 황개미 유체 조각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왜 황개미를 화장품 재료로 썼는지는 끝내 미스터리로 남았다. 이외에도 박물관 쪽은 10점의 화장품 용기 안 내용물을 분석해 고운 입자의 흙을 개어 얼굴에 팩을 하는 효과를 내는 미용 재료, 밀랍과 유기물을 섞은 일종의 크림, 오늘날의 립스틱에 해당하는 진사 가루, 탄산납과 활석을 혼합한 파운데이션 재료, 기름과 섞는 마사지 재료 등을 확인했다. 얼굴을 창백하게 하는 미백효과를 지녔으나 오늘날은 독성이 심해 사용하지 않는 납덩어리 등 상당수 화장품 재료가 인체에 유해한 탄산납과 수은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화협옹주의 무덤 출토 화장품 단지 내용물에서 나온 황개미의 머리 부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본 모습이다. 황개미를 화장품이나 미용재료로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협옹주의 화장품을 토대로 한 현대 화장품과 청화백자 화장품 용기가 개발돼 22일 오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다. 박물관이 한국전통문화대, 화장품 제조업체 코스맥스(주)와 손잡고 만든 이 화장품은 ‘프린세스 화협’(Princess Hwahyup)이란 상호가 붙었다. 옹주묘 출토 화장품 성분을 분석했던 정용재 한국전통문화대 교수팀이 인체 적용 실험을 거쳐 제작한 백색 크림과 전통재료 성분을 포함한 파운데이션, 입술 보호제(립밤) 등을 선보였다. 전통 미용 문화재의 가치를 담은 이른바 ‘케이(K) 뷰티’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추진한 문화유산 재활용 사업의 하나다. 박물관 쪽은 “묘에서 출토된 청화백자 화장품 용기 10점의 크기와 형태를 수정하고 문양을 단순화해 현대 화장품 용기로 제작했고, ‘맑고 침착하고 효성 깊은’ 옹주의 모습을 상상해 구현한 캐릭터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화협옹주는 생전 자태가 아름다웠고, 효심도 깊었으나, 사도세자처럼 영조에게 냉대를 받아 오누이간에 동병상련의 정이 각별했다고 한다. 불과 10살 때 영의정 신만의 아들 신광수와 혼인했으나 시집간 뒤 9년 만에 홍역을 앓다 숨진 비운의 왕실 여인이었다. 1970년대 이장된 뒤 잊혀졌던 그의 초장지에서 우연히 발굴된 화장품 유물이 출토 4년여 만에 현대식 제품으로 개발되고 캐릭터까지 나오게 됐으니, 스무살도 되기 전 숨진 옹주의 기구한 삶과 얽혀 ‘새옹지마’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고궁박물관·고려문화재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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