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의사들도 점점 외면하는 의협
의사들도 점점 외면하는 의협
의료공백 부른 집단휴진 끝내고
최대집 ‘우리 소중한 성과’ 자평
코로나19 ‘중국 차단론’ 등 주장
메르스 때 늑장 방역 비판 안 해
2012년 직선제 개원의가 좌우해
노환규 이은 최대집 체제 정치화
의사 일부 지지로 당선돼 과대표
강경보수 노선에 내부 반발 나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8월2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의협은 예고한 대로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문가 집단’ 의미 퇴색한 의협 4·15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뒤 최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의협이 반대했던 정책을 힘의 논리로 강행한다면 반드시 ‘전국의사총파업’으로 맞서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정부 여당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의료 강화 정책을 선제적으로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같은 날 쓴 다른 글에서 최 회장은 “우익사회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으로서 이번 총선 참패의 핵심 원인은 ‘사상의 부재’라고 판단한다. 대한민국을 공정과 정의의 나라로 세우고 북한을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겠다는 뜨거운 애국심과 강력한 우익 정당 운동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행동이 있어야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익 보수의 총선 패배 원인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 회장의 이런 언사에 대해 의협 내부에서도 불만을 드러내는 구성원이 많았다. 현실적으로 보면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의 공조가 중요한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나선 것은 의협 전체의 이익에 대한 고민 없이 최 회장의 개인적 정치 성향만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라는 숙원사업에 나선 정부를 의협은 ‘정치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감염병 상황을 정치에 이용한 것은 의협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하순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뒤 최 회장과 의협 집행부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중국발 입국 차단’을 강하게 주장했다. 당시 일부 보수언론과 의협이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차단해 방역에 성공했다’고 추켜세웠던 러시아와 미국은 현재 확진자가 각각 100만명, 650만명을 넘겨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유행한 나라가 됐다. 차별적일 뿐 아니라 실증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중국 차단론을 3월까지 일곱차례에 걸쳐 주장했던 최 회장은 3월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를 ‘방역 비선’으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발생 당시 각 학계가 의견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던 문제를 개선하려 뭉쳤던 범학계 대책위는 이 보도 뒤 즉각 해체됐다. 최 회장의 이런 지목은 사실상 ‘내부 저격’에 가까웠다. 대책위에 포함된 대한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등 11개 학술단체 대부분은 의협 산하 조직인 ‘대한의학회’ 소속이다. 그럼에도 그가 범학계 대책위를 비난한 것은 예방의학회를 포함한 범학계 대책위가 ‘중국 차단론’에 대해 ‘가능하지도 않고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의협 대표인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협회 소속 회원과 산하 학술단체를 저격한 것이다.
지난 3월3일 당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오른쪽)가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우한 코로나19’ 대책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최대집 의협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 8월23일 국회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의총’의 등장…가속 붙은 정치화 의협의 정치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협은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의약분업 당시 8개월 가까이 이어졌던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정부는 ‘의대 정원 축소’ 등의 당근을 주고 일단락 지었지만 그 뒤로도 의사들은 수시로 집단행동을 감행하며 목소리를 냈다. 2012년엔 의협 회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면서 의협 내부의 정치도 강화됐다. 개원의들의 입김이 강한 현재의 모습과 달리 과거 의협은 대학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2009년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이 설립한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은 의협의 형질을 바꿔놓았다. 의협이 개원의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불만에 힘입어 세워진 전의총은 회원 대부분이 개원의로 이뤄졌으며, 의협 내 최대 규모의 집단이다. 누리집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 6800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최대집 회장은 전의총 회장(2016∼2018년)을 지낸 뒤 의협 회장이 됐고, 전의총과 노 전 회장은 막후에서 여전히 ‘최대집 집행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일 최 회장과 정부의 막후 합의 관련 내용을 노 전 회장이 사전에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의사 13만명 중 6800명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최 회장이 의협 회장으로 당선될 때 얻은 표는 6392표(득표율 29.7%)에 지나지 않는다. 2018년 의협 회장 선거엔 선거권자(회비 납부자) 4만4012명 중 2만1547명(49%)만이 투표했다. 전의총과 같은 단체가 후방 지원해 전체 의사 가운데 단 5%의 표만 얻으면 ‘회장’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의협이 ‘강경 보수화’의 길을 간다고 해서 의사집단 전체가 ‘강경 우파’는 아닌 셈이다. 이런 선거제도의 문제가 지적되자 의협은 지난해 4월 대의원총회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의결했다. 2021년 4월 열리는 다음 회장 선거부터는 대표성을 좀더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최 회장의 임기가 아직 6개월여 남았지만 벌써부터 선거 열기가 뜨겁다. ‘이번에는 합종연횡을 해서라도 전의총이 의협을 독점하지 못하게 막자’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________________
박원순 고발 등 정치행위 몰두 최 회장의 강경노선은 의협 회장직을 맡기 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2004년 우파단체인 ‘자유개척청년단’을 세웠던 그는 2015년엔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혁투)를 설립해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우는 박원순 전 시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박 전 시장이 메르스 35번째 환자인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동선을 공개했다는 이유였다. 최 회장은 “증상이 경미해 자택 격리가 이뤄지지 않았고, 박 시장이 환자의 동선을 공개해 국민적 불안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중국발 입국 차단과 철저한 방역을 주장한 최 회장이 당시 박근혜 정부의 늑장 방역은 비판하지 않았던 건 아이러니다. 메르스 이후 2016년까지 최 회장은 의혁투와 함께 박 전 시장의 아들이 공익근무 판정을 받는 과정에서 병무청에 제출한 의료기록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그는 의협 회장이 된 뒤에도 이런 ‘길거리 정치’를 이어왔다. 의협 회장이 된 직후인 2018년 5월에는 ‘문재인 케어 저지 및 중환자 생명권 보호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엔 의사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퇴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 세력이 함께 참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________________
그들만의 협회를 정상화하라
지난 8월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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